강은홍
1934.09.30–2022.06.17
The Rev. Dr. Edwin Enhong Kang, 87, passed away Friday, June 17, 2022 in Kirkland, WA. He was born in Pyongyang, Korea, on September 30, 1934. He was predeceased by his parents Deok Sung Kang and Yoonsil Jeon, his brothers Seon Hong Kang and Young Geun Kang (both younger), and his loving wife of 50 years, Mae Sun Kang. He is survived by children J. P. (Keren) Kang, Jane Kang, and Michelle (John) Fagan; grandchildren Amanda, Olivia and Linus Kang, and Zinnia and Lila Fagan; and numerous other relatives around the world. He was a beloved son, brother, father, grandfather, friend, pastor, and colleague.
Growing up in Korea, Edwin experienced the traumas of Japanese occupation, World War II, Soviet occupation, the Korean War, and post-war depression in South Korea, whither he had escaped in December 1950, becoming separated from his mother and brothers in what became North Korea, which was a source of lifelong heartache and he campaigned for the reunification of the two countries. In 1960, he received his BA in English Literature from Soongsil College in Seoul. After teaching high school English for several years, he left for the US in 1963 to continue his studies, but received a life-changing call to the ministry en route, so he changed his plans and enrolled at Union Theological Seminary in Richmond, VA, which was the beginning of a proud and lifelong affiliation. After graduating in 1966 with his BD, he was ordained on June 25, 1967 by Washington City Presbytery (UPCUSA) and pastored congregations in Delaware and Ohio.
Edwin married Mae Sun Choi on October 11, 1970 at Sixth Presbyterian Church in Washington, DC, and thus started a series of global adventures as a family: J. P. was born in Wheeling, WV, Jane was born in Seoul, Korea, and Michelle was born in Saint-Agrève, France while they were studying French in preparation to go to Zaïre (the current Democratic Republic of Congo). There, Ed studied Tshiluba and operated the clinical pastoral education program at the Good Shepherd Hospital in Tshikaji (1974–77). After a year of home assignment in Richmond, VA, the Kangs served from 1978–89 in Tokyo and Fukuoka, Japan (with one-year home assignments in Decatur, GA and Princeton, NJ), where Ed served the Korean Christian Church in Japan with a focus on human rights and social justice as well as pastoring local congregations. In 1981, after learning his mother was still alive, he made his first trip back to Pyongyang for a joyful reunion with his mother, a brother, and numerous relatives, and continued to visit family there until 2017. In 1983, he received his D.Min. from Union Theological Seminary. From 1989 until official retirement in 2004, he served National Capital Presbytery and the Synods of the Mid-Atlantic and Northeast. In retirement, he continued to serve PCUSA in various capacities in New York.
When Mae was diagnosed with colon cancer in early 2018, Ed supported her through four surgeries and many appointments until her death on October 13, 2020, after which he moved to be with J. P. and family in Seattle. In late 2019, Ed was diagnosed with angiosarcoma, receiving treatment in New York and then Seattle, and through hospice, received wonderful care in the remaining weeks of his life and the blessing of a peaceful death.
Ed will be remembered for his love of life and passions—especially spicy food, languages, cultures, history, photography, and travel—but above all for his warmth and presence, which were a blessing to so many, but especially to his children, for whom he was a hands-on dad, often being in his home office when they would return from school, and volunteering at school activities.
On June 23, 2022, Ed received a green burial next to Mae in Woodlawn Cemetery in Snohomish, WA, and a public celebration of life is anticipated in the fall. The family is grateful for the many expressions of love and appreciation from people all over the world.
In lieu of flowers, the family invites gifts in memory of Edwin through an endowment the family has set up with the Presbyterian Foundation to benefit Congolese medical and health professionals:
https://bit.ly/MSKMem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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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홍목사는 1934년 9월30일생으로 2022년 6월17일에 87세를 일기로 워싱턴주 커클랜드에서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부친 강덕성씨와 모친 전윤실씨, 그리고 동생들인 강선홍씨와 강영근씨도 주님께로 갔고, 50년을 해로한 사랑하는 아내 강매선씨도 주님께로 가셨습니다. 자녀로는 아들 강제영(J. P.)과 며느리 계련(Keren), 딸 Jane Kang, 그리고 Michelle Fagan과 사위 John Fagan이 있습니다. 손녀 Amanda(신애)와 Olivia(은애), 손자 Linus(경식) Kang과 손녀 Zinnia와 Lila Fagan이 있습니다. 전 세계와 수많은 친척들이 살아 있습니다. 그는 사랑받는 아들, 형제, 아버지, 할아버지, 친구, 목사, 그리고 동료였습니다.
한국에서 자라며, 강목사는 일본 강점기와 2차 세계 대전, 소련의 점령, 한국 전쟁, 그리고 전후 남한에서의 처참한 삶을 경험했습니다. 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 북한을 탈출한 강목사는 북한에 있던 어머니와 형제들과 이별했으며, 평생 마음 아파하며 남북통일을 위해 일했습니다. 강목사는 1960년에 서울에서 숭실대학에서 영문학 학사를 받았습니다. 수년간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일하다가, 강목사는 1963년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 기간 중 인생을 바꾸는 목회로의 부르심을 받고, 계획을 바꾸어 버지니아 리치몬드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향후 유니온 신학교는 평생 큰 자부심을 갖게하는 학교로 자리잡게 됩니다. 1966년도 신학석사(BD)를 받았고 1967년 6월 25일 워싱턴시 노회(UPCUSA)에서 안수를 받고 델라웨어와 오하이오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강목사는 1970년 10월11일에서 최매선과 제육장로교회(워싱턴 DC)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그의 가족의 세계적인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제영(J.P.)은 웨스트버지니아 휠링에서 태어났고 Jane은 서울에서, 그리고 Michelle은 프랑스(Saint-Agrève)에서 자이레(현재의 콩고)로 가기 위해 프랑스어를 공부할 때 태어났습니다. 자이레에서 강목사는 Tshiluba를 공부해 Tschikaji에 있는 선한목자병원에서 임상목회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일했습니다(1974-77). 리치몬드에서 1년간 국내 선교를 담당하다가 강목사 가족은 일본으로 이주해 도쿄와 후쿠오카에서 섬겼습니다(1978-1989; 이 기간 동안 Decatur, GA와 프린스톤에서 1년씩 국내 선교를 감당했습니다). 일본에서 강목사는 한인기독교회를 섬기며 인권과 사회 정의에 초점을 맞추며 목회하였습니다. 1981년에 그의 모친이 아직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북한에 건너가 어미니와 형제들, 그리고 수많은 친척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고, 2017년까 수차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1983년도에 강목사는 유니온신학교에서 목회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1989년부터 2004년도에 공식적으로 은퇴할 때까지 강목사는 National Capital 노회와 Mid-Atlantic 대회와 Northeast 대회를 섬겼습니다. 은퇴 기간중에도 강목사는 뉴욕에서 미국장로교에서 여러 역할로 섬겼습니다.
아내 강매선이 2018년 초에 대장암 진단을 받았을때, 강목사는 4번의 수술과 치료에 전념했고, 2020년 10월13일 그녀가 주님께로 간 후, 시애틀로 이주 아들 제영의 가족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2019년 말, 강목사는 혈관육종(angiosarcoma)을 진단받고 뉴욕과 시애틀에서 치료받았고, 호스피스에서 남아있던 생애에 훌륭한 캐어를 받다가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복을 누렸습니다.
강목사는 그의 삶의 사랑과 열정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는 특히 매운 음식과, 언어들, 문화, 역사, 사진, 그리고 여행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함께 할 때마다 사람들이 경험했던 따뜻함은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이었습니다. 특별히 그의 자녀들에게 그는 항상 가까이 있는 아빠였으며, 그들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집에 있던 사무실에서 자주 있으며 그들을 맞이하였으며, 학교의 여러 활동들에 자원봉사하였습니다.
2022년 6월23일 강목사는 워싱턴 스노호미쉬의 Woodlawn 묘지에서 친환경 장례 절차에 따라 아내의 곁에 뭍혔고, 가을에 추모예배가 열릴 예정입니다. 가족들은 전 세계에서 쏟아진 사랑과 감사의 표현들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꽃을 보내는 대신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강은홍목사의 이름으로 장로교 재단에 기부하여 콩고의 의료인들을 돕는 것입니다. 다음의 website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s://bit.ly/MSKMem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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エドウィン・ウンホン・カン牧師(87歳)は、2022年6月17日(金)、ワシントン州カークランドで逝去しました。彼は1934年9月30日、朝鮮半島の平壌で生まれました。彼の両親のDeok Sung KangとYoonsil Jeon、弟のSeon Hong KangとYoung Geun Kang、そして50年来の愛妻であるMae Sun Kangはすでに逝去しています。一方で、子供のJ. P. Kang(配偶者Keren)、Jane Kang、Michelle Fagan (配偶者John)、孫のAmanda, Olivia, Linus Kang、Zinnia, Lila Fagan、さらに世界中に多くの親族が残されています。エドは彼らにとって、最愛の息子、兄弟、父親、祖父、友人、牧師、同僚でした。
朝鮮半島で育ったエドは、日本による占領、第二次世界大戦、ソ連による占領、朝鮮戦争、大韓民国における戦後不況という苦況を経験しました。また、1950年には大韓民国へと脱出したために、後に北朝鮮となる地に住んでいた母や兄弟とは離れ離れと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このことは彼の生涯の心の痛みとなり、彼は両国の統一を求める運動を展開しました。1960年、ソウルの崇実大学で英文学の学士号(BA)を取得し、高校で数年間、英語を教えた後、1963年に渡米して学びを続けました。この学びの途中、彼は、その人生を大きく変える、ミニストリーへの召命を受けたので、当初の予定を変更してバージニア州リッチモンドにあるユニオン神学校に入学しました。わたしたちが誇りに思う彼のミニストリーの生涯は、ここから始まりました。1966年に宗教学学士号(BD)を取得して卒業した後、1967年6月25日にWashington City Presbytery(UPCUSA)で教職となり、その後、デラウェア州とオハイオ州の教会を牧会しました。
1970年10月11日、ワシントンDCの第六長老教会でエドはメーサン・チョイと結婚しました。そして、彼の世界を駆け巡る冒険に満ちたミニストリーは、家族と共に進められていきました。J. P. はウィーリングで誕生し、Janeはソウルで誕生しました。さらに、Michelleは、ザイール(現在のコンゴ民主共和国)渡航に備えてフランス語修得のために一家が滞在していた、フランスのサン・アグレブで誕生しました。ザイールでエドはツシルバ語を学び、ツカジにあるグッドシェパード病院で臨床司牧教育プログラムを運営しました(1974-77年)。その後、バージニア州リッチモンドで1年間、母国奉仕をした後、1978年から1989年まで、東京と福岡で奉仕しました(ただし、その間、ジョージア州ディケーターとニュージャージー州プリンストンであわせて1年間の母国奉仕もしました)。1981年、自分の母親が生きていることを知ったエドは、朝鮮戦争後初めて平壌に戻り、母親、兄弟、多くの親族と喜びの再会を果たしました。そして、平壌にいる家族への訪問は、2017年まで何度も繰り返されました。また、1983年、母校のユニオン神学校から牧会学博士(D.Min.)を授与されました。そして、日本から帰国後、1989年から2004年の正式引退まで、National Capital PresbyteryとMid-Atlantic SynodとNortheast Synodに仕えました。さらに、退職後も、ニューヨークにおいて、様々な立場からPCUSAに奉仕しました。
2018年初めにメイが大腸がんと診断されると、2020年10月13日にメイが亡くなるまでの間、エドは、4回の手術と数多くの診察の中を通った彼女を支え続けました。メイの逝去後は、シアトルのJ・Pと家族のもとへ引っ越しました。2019年末、エドは血管肉腫と診断されました。そこで、まずニューヨーク、そしてシアトルで治療を受けました。地上の生涯の最後の数週間は、ホスピスにおいてよいケアを受けることができ、祝福のうちに安らかな死を迎えました。
エドは、人々への愛とその深い情熱で記憶に残る存在です。特に香辛料のきいた料理、言語、文化、歴史、写真、旅行についての彼の思い出は尽きません。しかし、なによりも、エドがいることで人々が感じた温かさは忘れら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彼の存在そのものが多くの人々にとっての祝福となったのです。彼の子どもたちにとってエドはかけがえのない存在でした。子どもたちが学校から帰ってくると、エドは自宅のオフィスにいて彼らを迎えていましたし、ときには学校行事でボランティアをしてくれたのですから。
2022年6月23日、エドはワシントン州スノホミッシュのウッドローン墓地にメイの隣で緑葬されました。秋には彼の生涯を覚える記念会が持たれる予定です。遺族は、世界中の人々から寄せられた多くの愛と感謝の気持ちにたいへん励まされています。
遺族は、エドウィンを偲のぶために、花に代えて、長老財団に設立した、コンゴの医療・保健専門家のための基金を通じての寄付をお願いしています。 https://bit.ly/MSKMemFund